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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의 항일운동 유적지를 기억하며 🇰🇷카테고리 없음 2025. 3. 1. 11:18반응형SMALL
📢 포천의 항일운동 유적지를 기억하며 🇰🇷
포천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싸웠던 선조들의 희생과 정신이 깃든 소중한 항일운동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이 유적지들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후대에 뜻깊은 유산을 남기는 곳입니다.
✅ 왜 포천 항일운동 유적지를 보존해야 할까요?
🔹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
포천 전역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며, 학생들과 시민들이 직접 방문하여 선조들의 독립 의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 지속적인 관리와 보존 필요
일부 유적지는 관리가 잘 되고 있지만, 훼손된 곳도 존재합니다. 보수와 정비를 통해 역사적 가치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 의미 있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 가능
신북면사무소 터, 왕방산 전투지 등을 중심으로 역사 탐방 코스를 개발할 수 있으며, 포천의 독립운동사를 알리는 콘텐츠로 지역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 포천 지역 주요 항일운동 유적지
🔸 무봉리 3·1운동 만세 시위지 – 소흘읍 거친봉이길 61-13 (무봉건강문화센터 보호수 옆)
🔸 상승시장 황재호 의병 활동지 – 소흘읍 송우로 21번길 9 (송우리라마을회관)
🔸 송우리 헌병 분견소 3·1운동 만세 시위지 – 소흘읍 송우로 79 (황반도터 옆)
🔸 신북면사무소 터 3·1운동 만세 시위지 – 신북면 호국로 2066 (신북119지역대 앞)
🔸 영평면초 터 3·1운동 만세 시위지 – 영중면 전영로 1429번길 5 (영평초등학교 정문 앞)
🔸 왕방산 김연성 의병 전투지 – 선단동 산11-31 (선단동체육센터 맞은편 50m)
🔸 면암 최익현 선생 생가터 – 신북면 가채리 710-1 (최익현 선생 생가터)
🔸 포천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지 – 신읍리 40 (포천초등학교 정문 옆)
🏳️ 1919년, 포천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함성
📜 3월 13일, 포천 학생들의 외침이 시작되다!
서울에서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포천공립보통학교(현 포천초등학교) 와 영평공립보통학교(현 영평초등학교) 학생들이 동맹휴학과 만세운동을 준비했습니다. 포천공립보통학교 학생 100여 명은 일본인 교원의 감시를 피해 학교 뒷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영평공립보통학교의 정수환 학생은 철원과 포천의 다른 학교들이 3·1운동에 동참했음을 알리며 만세시위를 제안했지만, 일본인 교원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 3월 24일, 포천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번지다!
소흘면·가산면 주민 600여 명이 송우리 헌병분견소 인근에서 만세운동을 벌였고, 일본 경찰과 충돌하며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영중면 주민들은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친일 면장을 응징한 뒤, 다시 영평헌병분견소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습니다.
📜 3월 29일, 포천의 함성이 절정에 이르다!
무봉리에서는 1,000여 명이 만세시위를 벌이며 거리 행진을 했고, 주동자 5명이 체포되었습니다. 군내면 주민 200여 명도 유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신북면에서는 2,0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독립을 외쳤으며, 송우리 헌병주재소를 습격하는 과정에서 최석휴 열사가 경찰의 총격으로 순국하였습니다.
📜 4월 10일, 마지막까지 이어진 포천의 독립운동
관인면에서는 기독교 청년들이 주도한 600여 명의 만세운동이 있었으며, 결국 31명이 체포되었습니다. 포천의 독립운동은 3월 13일부터 4월 11일까지 한 달 가까이 계속되었습니다.
📢 포천의 3·1운동, 미래세대에게 남길 유산
포천의 3·1운동은 학생들의 외침과 참여가 컸던 운동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포천의 만세시위지를 탐방하며 그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 선조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그 뜻을 기리는 것이 진정한 역사 계승입니다.
포천의 항일운동 유적지 보존과 관리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 함께 기억하고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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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제공: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반응형LIST